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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

무지는 악이 될 수 있다

일찍 출근해서 뿌듯한 마음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휴가자를 확인하시던 팀장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오늘 훈련이라고 하지 않았어?" 하고 물으신다. 예비군 훈련이 있는 날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었던 거다[각주:1]. 다행히 지금 일하는 회사가 멀리 있지 않고 훈련 장소(동사무소)가 집에서 코앞이라 여유있게 이번 주 업무를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설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해보니 TV 속에서 영결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차피 휴가 처리 되었으니 훈련을 미루고 조금 늦었지만 시청으로 나갈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훈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휴대폰은 배터리를 수거해서 막았지만 훈련 과정에서 짬짬이 책 읽는 것은 관대하게 봐주어 한참만에 다시 읽기 시작한 후불제 민주주의를 90페이지 정도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더위도 지루함도 심하게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 간단히 식사를 하고 책을 마져 읽고 있었는데 에필로그에서 아래 문장을 접하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지 않으면 그게 악이 된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과 함께 불거져 나온 책임론을 접하면서 그 책임의 일부는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국민에게도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 반성은 좀 가벼웠던 것 같다. 이제 "나는 몰랐다"는 변명을 할 수도 없다. 무거운 깨달음이지만 수업료를 너무 비싸게 지불한 것 같다. "권력자의 선한 의지에 의존"하는 후불제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시민이 되기 위해 죽을 각오로 살아보겠다. 양복 입은 침펜지들에게 내가 그저 투표 용지 한 장 들고 있는 무력한 개인으로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테다.

이제 막 일독을 마친 후불제 민주주의와 오늘 도착한 책 들


  1.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일정을 깜빡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일종의 패턴을 발견한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하고 검토해서 나중에 따로 포스팅해볼까 생각 중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