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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hiary

생각하는 인물사진

2006년 10월에 제출한 사진예술의이해 중간 과제

기계전자공학부 9731*** 주원기
사진 번호: 5

분석할 사진을 선택하기 위해 제시된 5장의 사진을 순서대로 훑어보았는데, 각 사진의 첫인상은 아래와 같았다.
 
#1 유명한 사진가의 작품일 것 같다. 자료 조사하다가 밤 샐 것 같고, 잘 알려진 사진에 엉뚱한 설명을 덧붙이는 건 아닐지…… 시작하기 전부터 부담스럽다.   
#2 영화 포스터인 것 같은데 음침한 분위기가 싫다.   
#3 한때 좋아했던 Mr. Big의 보컬과 분위기가 닮은 사나이. 마른 몸과 무심하게 응시하는 듯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4 암석 단면 같다. 과학 사진인가?   
#5 뭔가 어설프고 어색한 느낌이다. 어쩌면 아마추어 사진가일지도 모르겠다. 집안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친숙한 소재를 담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1번 사진은 작가의 유명세가 부담스러웠고, 2번 사진은 합성사진이라는 점이 부담스러웠으며, 4번 사진은 너무 추상적으로 보여서 자칫 뜬구름 잡는 얘기에 그칠 우려가 있어 보였다. 강한 인상을 주는 3번 사진과 5번 사진을 놓고 잠시 고민을 했는데, 비교적 친숙한 소재를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느낌을 주는 5번 사진이 좀더 내가 찍고 싶은 사진에 가까웠기에 분석 대상으로 선택했다.
카메라 조작이나 기술적인 내용은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는 상태임에도 막상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무엇을 찍어야 할지 막연한 경우가 많다. 책이나 사진 관련 웹 사이트를 통해서 많이 접하는 조언이 “친숙한 소재에서 시작해라.”, “특별한 소재를 찾으려고 하지 마라.” 등 소재주의를 경계하는 것들인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찍어놓고 보면 지극히 평범한 장면이라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지도 않고, 특별히 예쁘거나 깔끔한 느낌을 주지도 못해서 마음에 차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선민의 사진이 보여주는 분위기 자체가 마음에 쏙 들거나 닮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친숙함을 낯섦으로 치환할 수 있는 시각을 분석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열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화면 중앙에 위치한, 입술을 꼭 다문 무표정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두 아이의 얼굴이었다. 사진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 같은 얼굴이다. 침대 머리맡으로 늘어져 있는 공주 커튼의 선을 따라 천정으로 이동하여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은 깔끔한 장식 조명을 지나 창가의 하얀 커튼으로 시선이 흐른 뒤에는 사진을 찍어내는 잉크젯 프린터의 움직임을 쫓아가듯 사진 구석 구석을 꼼꼼히 살펴보게 된다.
사진에 담긴 공간 전체가 피사계 심도 안에 놓여 있고, 모든 피사체를 밝은 조명으로 비추어 선명하게 보이도록 하고 있다.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에서 사용되어 영화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딥포커스 기법의 전형을 보여준다 하겠다. 따라서 작가는 미장센에 더욱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야 했을 것이고, 감상자에게는 프레임 안의 사물을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사진의 지배적인 분위기는 차분함, 어색함, 겉도는 느낌이다. 이러한 느낌을 자아내는 시각적 효과를 두 가지 발견했는데, 먼저 거리 차가 별로 없는 두 침대의 상대적인 크기에서 볼 수 있듯이 광각렌즈에 의해 원근감이 강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평면적인 느낌을 준다. 섬세하게 조정한 조명으로 그림자를 모두 지워버린 때문인 것 같다. 다음으로 따뜻하고 귀여운 느낌을 주는 핑크색이 주된 색상으로 쓰였고, 더욱이 부드러운 파스텔 톤임에도 불구하고 차갑고 건조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중립적인 흰색을 치우치지 않게 넓게 분포시킨 것과 왼쪽에 서 있는 아이의 푸른 의상, 아이들의 굳은 표정이 이에 기여하고 있다.

 작가 이선민은 2004년 <여자의 집 II> 전시회를 앞두고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이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변해왔다고 말했다. 예시 사진 “예은과 은진”이 포함된 <Twins> 시리즈를 거쳐 현재(2006년) 진행 중인 작업에서는 “여러 행위와 의식을 통해 현대 가족의 정체성과 갈등을 비추어보고 이를 통한 발전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 도계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일련의 작업들은 일관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가족 성원 사이에 숨겨진 갈등을 발견하고, 이러한 관계와 갈등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각자의 정체성을, 나아가서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그 동안 다큐멘터리 사진이 아닐 바에는 인물 사진이라면 가능한 편안한 모습, 즐거운 모습, 행복한 모습을 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찍은 사람이나 찍힌 사람이나 기분 좋게 웃으면서 함께 볼 수 있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선민의 사진은 내가 생각했던 이 중요한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나무랄 데 없이 꾸며놓은 방 안에서 행복을 결여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두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너희는 무엇이 부족하기에 그런 표정을 짖고 있는 거니?”하는 물음이 떠오른다. 이런 물음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감상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어떤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가? 나라는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이선민은 사진을 통해 감상자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하고, 질문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했던 생각에 스스로 다가서도록 유도한다.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정서, 감상을 직접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하는 화두를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로 사진을 이용하는 것이다. 또한 감상자의 능동적인 선택을 유도하는 딥포커스 기법은 이러한 접근 방식과 더없이 잘 어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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